"끝도 없는 일 깔끔하게 해치우기"를 읽다.(부제: GTD와 프랭클린 플래너) by 푸른달팽이

나는 본디 스티븐 코비의 "소중한 것 먼저하기"의 방법론 신봉자이다.
"소중한 것부터"가 아닌 "닥치는 대로 처리"하는 방식이라고 하는
GTD(Getting things done)에 대해서도 일찌기 알아본 적이 있었지만,
눈앞에 닥친 일만 처리하다가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지냈던 날들을 후회한 경험이 있기에
GTD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근래의 건강 이상으로 단기 기억력이 저하되고, 
몸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가능한 일부터 처리할 수 밖에 없게 되면서 
프랭클린 플래너에 우선순위를 표시하지 않고 
소중한 것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처리하며 지내보다가,
이번 기회에 GTD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좋은 점은 
골라서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어 읽었다.
끝도 없는 일 깔끔하게 해치우기
데이비드 알렌 지음, 공병호 옮김 / 21세기북스(북이십일)
나의 점수 : ★★★★★

GTD 입문서이자 원조. 개인적으로는 스티븐 코비의 프랭클린 플래너와 비교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본질적으로는 같은 철학인 것 같다.

읽고 난 후에 확실해진 점은 원래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르게,
GTD는 프랭클린 플래너의 사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플래너는 스스로 일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는 이사급 이상에게 맞고
GTD는 스스로 우선순위를 정할 수 없는 부장 이하에게 맞다는 식이나,
플래너는 중요한 일들을 먼저 처리해야만 하고, 
GTD는 빨리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중요하지 않더라도 당장 해야 한다는 식으로
두개를 대결 대조 구도로 놓고  설명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시간관리를 잘 하려면 전략과 실행력이 모두 뒷받침 되어야 한다.
프랭클린 플래너는 삶의 '전략'을 보다 강조한 방법론이고,
GTD는 '실행력'을 보다 강조한 방법론일 뿐이다.
각각 한쪽을 강조했을 뿐이지 다른 한쪽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GTD의 핵심 내용이 일을 목록화하고 신속하게 해치우는 것이긴 하지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일을 목록화해서 처리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방향성'을 잃지 않기 위한 방법도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의 8장에 써 있는 바에 의하면
한 주에 한번씩 중간정도의 미래, 먼 미래를 염두에 두고 
균형있게 할 일들을 찾아내어 리스트에 포함하는 것을 권하고 있고,
처음 GTD를 시작하기 위해 모든 할 일들을 목록화 하는 과정에서도
할 일들을 모조리 떠올리는데 도움이 되는 참고 분류를 제시하며
당장 눈앞의 일들 뿐만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필요한 일들도 상기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프랭클린 플래너에서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는 원칙과 다를 바 없는 내용이었다.

반면, 본문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기는 하다.
이미 여러 번 강조했듯이 상황이 변화하면 결국 다시 정리하거나 재 작성해야 하는 우선순위 목록을 만드는 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오히려 자기관리 작업에 스트레스를 제공하는 요인이 될 뿐이다. 우선순위는 전체 리스트를 한번 훑어보기만 해도 직관적으로 결정할 수 있으며, 수많은 변동요인이 발생하면 아무 쓸모도 없어진다.
이 문장을 보면, 우선순위라는 것은 스트레스 요인일 뿐이고
너무 변동이 많기 때문에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면 우선순위를 매번 직관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지 
모든 일에 우선순위가 없이 해치우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문의 다른 곳에서는 심지어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하루가 끝날 무렵에 당신이 하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도 만족감을 느끼려면 책임, 목표, 가치 등에 기준한 의사결정을 미리 의식적으로 내려두어야 한다. 이 과정에는 당신이 일하는 조직의 목표, 가치, 방향성과 아울러 당신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인물들과의 복잡한 관계가 반드시 관여된다.
이것 역시 프랭클린 플래너에서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방식과 같다.
할 일 목록중에서 당장 보기에 좋은 일부터 골라서 해치우라는 이야기는 없다.
GTD는 할 일 목록 중에서 우선순위를 직관적으로 매번 결정하라고 충고할 뿐이다.

프랭클린 플래너쪽에서 GTD를 생각해보아도 그리 달라지는 것은 없다.

프랭클린 플래너에서 하루에 처리할 리스트를 우선순위와 함께 계획했을 때
우선순위가 높은 일이 처리되기 전에는 다음 우선순위를 거들떠보지도 말라는 이야기는 없다.
또한, 2분 이내에 끝나는 일이라도 중요한 일이 처리될때까지는 손대지 말라는 이야기도 없다.
다만 어떤일이 더 중요한 일인지를 잊지 말고
보다 생산적이고 목표를 향해가는 쪽의 일을 위해 시간을 더 투입하라고 이야기할 뿐이다.
우선순위가 정해져 있더라고 하더라도 여건상 필요하면 순위를 바꿔서 실행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우선순위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말단 직장인이라면 프랭클린 플래너가 쓰기에 맞지 않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느 날씨 좋은 날 가족들과 피크닉을 가는 것과 
회사에서 보고서를 써야하는 일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할 때,
가족이 회사보다 중요하여 피크닉을 가는 것이 실제로는 소중하지만
의지와 관계없이 보고서를 쓸 수밖에 없고, 프랭클린 플래너 식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물며 자유가 구속된 노예라고 할 지라도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판단할 수 있으며,
소중한 것을 자신의 의지대로 우선순위에 둘 수 있다.

실제로는, 피크닉을 가지 않고 보고서를 쓰게되는 것은 우선순위를 위배하지 않는 행동이다.
보고서를 쓰지 않아 회사에서 고용이 불안해지면 가족의 행복이 위태롭게 될 수도 있으므로
보고서를 쓰는 것이 당장의 피크닉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피크닉을 포기하는 것이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피크닉을 가는 것이 보고서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보고서를 내팽개치는 것이 옳다.

스스로 의미를 찾아 소중한 것을 발견하고 결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남이 시키는 대로 자신의 삶이 좌우되는 것이 직장생활이라면
그것은 단단히 잘못되어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GTD의 저자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스스로에게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만 일을 처리할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 
빠르게 실행할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불행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에, 또 그 우선순위대로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느라 스트레스 받지 말고
일을 잘게 쪼개고 분류해서 신속하게 해치우는 즐거움을 만끽하라고 충고한다.

프랭클린 플래너에서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만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지 못하면
덜 중요한 일들을 하느라 인생을 허비해서 불행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일을 효율적으로 잘 하는 방법을 찾기 이전에 일이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발견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 삶의 목적에 이르라고 충고한다.

프랭클린 플래너를 잘못 이해하고 활용하는 사람들은
오늘의 할 일을 무조건 우선순위대로만 실행하려고 하다가 
중요한 일들도 못하고 덜 중요한 일들도 못하곤 한다.

GTD를 잘못 이해하고 활용하는 사람들은
당장 눈앞의 일들만 처리하느라고 
가족과 건강같은 중요한 것들을 뒷전으로 미루곤 한다.

그래서인지 프랭클린 플래너를 사용하다가 맞지 않아 GTD로 옮기려는 사람도 있고,
GTD를 사용하다가 맞지 않아 프랭클린 플래너로 옮기려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정말로 프랭클린 플래너를 잘 사용하는 사람은 융통성있게 우선순위를 운용하고,
GTD를 정말로 잘 사용하는 사람들은 무엇이 중요한지를 잊지 않고 실행한다.

가고자 하는 방향을 놓치지 않으면서 즐겁게 그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전략과 실행력 모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GTD와 프랭클린 플래너의 방법론은 배타적이지 않기 때문에 장점을 택하여 활용할 수 있다.
나는 두 장점을 모두 선택하여 활용하는 것이 더 나은 시간관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GTD의 장점을 받아들여서
여러 개의 일로 되어있는 프로젝트성 일을 잘게 쪼개어 
실제로 해치워야 할 일로 기록하여 표현하는 방식을 채택하게 되었고,
특정 상황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을 상황별로 나누어 리스트를 만드는 방식도 받아들였다.
또 하고싶거나 해야 할 일이 생각났을 때 날짜 구분 없이 즉시 작성할 수 있는 
"언젠가-어쩌면" 리스트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프랭클린 플래너식의 방식도 유지하여
여전히 매일 아침 오늘 할 일 중에서 어떤 것이 중요한 일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매 주 역할별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위클리 컴파스를 작성하며,
중요한 일들을 잊지 않고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결국 좋은 시간관리 방법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것이므로
남이 소개한 방법을 무작정 따라하려고 하기 보다는
포기하지 말고 조금씩 개선해나가며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시간관리에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
스마트폰을 구입해서 스마트한 일정 관리를 하고 싶은 사람,
GTD를 쓰면서 오히려 삶이 피폐해졌다고 느끼는 사람,
프랭클린 플래너를 쓰면서 뭔가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덧글

  • 셜로콤즈 2010/08/03 22:57 # 삭제

    와 진한 포스팅이네요 ㅋㅋ 저 요새 삶이 좀 피폐한데 뭐라도 읽어봐야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 푸른달팽이 2010/08/04 07:35 #

    쓰다보니 하고 싶은 말이 많아져서^^;
  • 늘하 2010/08/04 09:39 #

    좋은 글이네 ^^ 너의 책 읽는 속도를 감안했을때..
    글 쓰는 시간이나 읽는 시간이나 비슷했을 듯한 ㅋㅋ

    내 생각에 플랭클린 플레너의 핵심전략은
    중요한 일을 놓치지 않으면 자질 구레한 일들이 줄어든다 라는 가정에 있는 듯.

    나무를 할때, 잠간이라도 짬을 내어서 도끼를 갈아야 한다는 식으로 비유하곤하는데,
    재태크에서 저축(혹은 투자)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 푸른달팽이 2010/08/04 13:52 #

    요즘은 머리가 안돌아가서 빨리 읽을 수가 없어^^
    글 쓰는데 애썼겠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은거지?

    그래.. 저축이 중요하다는 맥락과 함께,
    왜 저축을 하고 있는지 목적을 잊지 말라는 것도 포함하는 것 같고.
  • 움훼훼 2010/08/04 17:58 #

    글쓰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진 몰라도,
    글쓴이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았군요

    음..뭐랄까..좋네요 ^^
  • 푸른달팽이 2010/08/04 18:12 #

    감사합니다.^^
    예전처럼 물흐르듯이 마구 써제끼지 못하는 대신
    구성을 잡고 살붙이고 고쳐쓰고 단락위치 바꾸고..
    정석대로 순차적으로 작업을 해나가면 어느정도 지나면 글이 되어 있더라구요^^
  • 2010/09/01 16:20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푸른달팽이 2010/09/01 23:29 #

    이 책은 다니고있는 회사 사내 도서관에서 구해서 읽었습니다.
    절판된 것으로 알고 있구요..
    한번 주변의 도서관에서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전화로는 따로 연락드리지 않겠습니다.
  • capwangkim 2012/08/18 00:58 # 삭제

    좋은 글 보고갑니다. 절대적인 방법이란 없는 것이겠지요. 두 가지 방법 모두를 체화시키려는 노력을 본받고 싶습니다. 내일이라도 당장 소개해주신 책을 구해봐야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 푸른달팽이 2012/08/22 17:06 #

    감사합니다^^
    절판된 책인데 중고로 구하실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