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기억,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읽다. by 푸른달팽이

투병의 막마지, 이제 머리가 원활히 돌아가기 시작했는지 시험할 겸
아내가 예전에 권했던 책을 꺼내 읽었다.
폭력의 기억,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
앨리스 밀러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나의 점수 : ★

어린시절의 부모에 의한 폭력이 성인이 되어서 심리적은 물론 육체적인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내용. 객관적인 근거 대신 저자의 신념과 신념이 투사된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책 전반에 흐르는 아동폭력에 대한 저자의 분노감이 가득한 책.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어린아이가 겪은 폭력은 어른이 되어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나타나거나
우울증, 마약중독, 중병, 자살, 요절을 초래한다.
도스토예프스키, 프리드리히 쉴러, 버지니아 울프 등 유명 작가들이 그 예이다.
부모를 맹목적으로 존경하라고 강요하는 도덕이 
사람들을 이 폭력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
많은 심리상담가들이 이 도덕에 얽매여 
폭력에 대한 용서를 해법으로 피상담자를 강요하는 것은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어린시절의 폭력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기만하지 말고, 
부모를 사랑할 수 없다면 사랑하지 않으면 된다.
이치에 어긋나지 않고 좋은 주장이다.
부모에 대한 증오이든 사랑이든 결국 남겨두게 되는 저자의 조언이
"사춘기의 끝은 부모를 절대자가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받아들일 때 온다"는
평소 나의 생각과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반되는 견해는 아니다.

하지만 다소 불만인 것은 저자가 이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야기하는 방식이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의 경험으로는 확실하다.' '과장인것 같은가? 하지만 그렇다.'등
자기 확신에 찬 스토리텔링을 통해 공감시키려 하는 방식이며
객관적인 근거를 들어 설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읽은 책들의 저자는 97%정도가 남성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간혹 몇몇 여성 저자가 쓴 책들을 읽을 때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남성 저자들과 확연히 다르다는 점에 신기해하고,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에 때로는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리고 이같은 저술방식이 
남성과 여성의 일반적인 대화 방식의 차이와 비슷하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되는데,
다시말해 논리적인 방식을 취하느냐, 공감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취하느냐 하는 것이다.

남성들은 보통 객관적인 사실과 논리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여성들은 저자 자신의 사례를 예로서 들면서 독자의 공감을 구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독자의 입장에서도 남성들에게는 남성적인 서술이 효과적이고 이해가 빠르지만,
여성들에게는 여성적인 서술이 더 이해하기 쉽고 공감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심리적으로 억압되어 부모를 억지로라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고통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하지만, 부모는 일부러 사랑할 필요도, 증오할 필요도 없는 
그저 하나의 인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이 책은 그다지 필요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