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 관상을 보러 다녀왔다. by 푸른달팽이

관상에 관심이 생겨서 허영만의 "꼴"을 읽고 난 후에도
본격적으로 전문적이지는 못하더라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된 책을
한 권 정도 읽어보고 싶어서 대형 서점에서 여러 책들 중에 선별했다.
관상과 수상
이남희 지음 / 다밋
나의 점수 : ★★★★★

관상 해설서 중에서 요점이 명확하면서도 사례 설명이 적당하여 선택한 책.

관상 부위별로 사례별로 정리가 잘 되어있는 편이며,
설명과 함께 그려져있는 그림이 정형화되어 있어서 이해가 쉬운 편이다.
중간 중간에 저자의 철학적 견해에 대한 부분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관상을 볼 때 부위별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파악하는 데에는 매우 적절한 책이었다.

이렇게 책을 읽고 보니 직접 한번 관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내 얼굴의 특징들이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이 궁금해져서였다.
눈썹이 긴지 짧은지, 코뿌리는 꺼진건지 아닌지, 법령은 뚜렷한 편인지, 귀는 잘생겼는지,
내가 나 스스로를 보고 있자면 가장 익숙한 얼굴이여서인지 너무나 평범하게 보일 뿐이어서
여러 얼굴을 관심있게 본 관상가(관상쟁이라도)가 보기에 어떤지 궁금했다.

그밖에도 관상을 볼 때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지도 궁금했고,
한편으로는 당연히 내 관상이 어떤지 궁금하다는 것도 관상을 보고 싶어진 이유였다.

처음에는 관상을 제대로 잘 본다고 소문난 관상가를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며
"꼴"에 나오는 신기원 선생을 찾아가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게까지 공들일 것까지 있나 싶기도 하고 좀 부끄럽기도 하고 해서
기억에 떠오르는 대로 인사동 골목길을 찾아가면 관상을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인사동을 찾았다.

적당히 점보는 사람을 골라 "관상 위주로" 보아달라고 하고 보았는데(복채 1만원)
관상내용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대신 몇 가지 교훈과 경험을 얻게 되었다.

그 경험이라는 것은... 관상을 보는 것도 수상, 사주 등과 같이
점장이의 두가지 기본 소양을 갖춘 상태에서 개별 이론을 조금만 공부하면
귀신같이 맞추지는 못하더라도 욕은 안먹고 점을 봐줄 정도는 한다는 생각이다.

점장이의 두가지 기본 소양이라는 것은
내가 사이비로 점을 봐주면서 스스로 깨달은 화법을 말하는데,
그 중 첫째는 '맞추면 강조하고 틀리면 재빠르게 화제를 돌리기'이고
둘째는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고 나서 맞추면 강조하고 틀리면 그 점을 주의시키기'이다.

첫번째 소양에 대한 예를 들어,
"결혼을 아직 안하신것 같네요?"라고 해놓고 상대방이 "예"라고 대답하면
"이러저러해서 결혼을 아직 안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라고 한번 더 강조해주는 것이고
상대방이 "아니오?"라고 대답하면
"예 그렇군요, 결혼은 언제 하셨습니까? 계절은 봄에 하셨나요?"라는 식으로
바로 다음화제로 넘어가는 식이다.
만약 틀렸는데 "이러저러해서 안했다고 보았는데 결혼 하셨군요..?"라는 식으로
점과 사실이 다른 것을 확인하는 발언을 하면 신뢰가 확 떨어지지만
즉시 화제를 돌리고 주위를 분산시키면 최소한 본전은 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소양에 대한 예를 들자면,
"혹시 집 주위에 감나무가 있나요?"와 같이 확률적으로 희소한 상황을 질문하면
맞추는 경우 상대방은 "어..? 그런걸 어떻게 아셨어요?"라는 반응이 나오고 신기해하게 되고,
상당히 세밀하고 특이한 부분을 쪽집게처럼 잘 맞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틀려서 "아닌데요..?"라고 하더라도 "감나무가 있었으면 큰일날 뻔 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면
역시 최소한 본전은 할 수 있다.

정말로 감나무 이야기를 하는 점쟁이는 없겠지만,
"올해 부모님 건강이 괜찮으신가요?"
"지금 괜찮으시다면 해 넘어가기 전에 사고를 조심하세요",
"최근에 애인과 헤어지지 않았나요?"
"아니라면 올해 애인 단속 잘 하세요"와 같이 응용되는 스킬이다.

위와같은 두 스킬만 가지면 점괘가 사실과 다르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점을 봐 줄 수 있기 때문에 점쟁이의 기본 소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주까페 같은 데서 점을 보면서 저 두가지를 염두에 두고 있으면
거의 대부분의 대화가 저렇게 흘러가고 있는게 빤히 보이는 바람에
2004년 이후로 사주까페에는 절대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었다.

그리고, 이번에 인사동에 가서 관상을 볼 때에도 똑같은 것을 느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타래가 생년월일에서 나온 사주냐, 관상이냐의 차이였을 뿐
틀리면 얼렁뚱땅 넘어가고, 맞추면 강조하고, 단정적으로 말한다음 틀리면 주의시키고..
점괘를 설명하는 방식이 빤히 보여서 역시 관상도 앞으로는 볼 생각이 없어졌다.

관상 잘 보는 사람, 사주 잘 보는 사람에게 한번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잘본다는게 별건가, 내가 우려하는 것과 같은 것을 조심하라고 이야기하고
내가 희망하는 것을 이루어질거라고 이야기해주는 것이 잘 보는 거겠지.
그렇게 이야기해 주어야 내가 '잘 보는 사람이다'하고 인정할테니 말이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어딘가 있다고 하더라도
굳이 만나서 돈주고 그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얼굴 생김생김으로 과거와 미래를 읽는 관상보는 법이 아니라
사람의 인상과 표정을 두고 성격을 예상할 때 실수없이 사람을 볼 수 있는
인상 보는 법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의 좋은 공부를 했다.